350 09.9.10 태백 대덕산,금대봉,우암산.10km.5:00.맑음27℃.
350 09.9.10 태백 두문동재 금대봉(1418) 우암산(1348)-대덕산(1310)-분주동삼거리-검룡소-검룡소주차장. 10km.5:00.맑음27℃.
38번도로 두문동재'싸리재'(10:20-30)-금대봉(10:55)-우암산갈림 삼거리(11:12)-우암산(11:35)-고목나무샘(12:25)-분주령(12:50)-1215봉(13:10)-대덕산(13:20-도시락-50)-분주동골 삼거리(14:20)-검룡교(14:35)-검룡소(14:55)-검룡소 주차장(15:20-45)-이천휴게소(18:55)-강변역(19:30)-합정동(20:10)
지난주는 금산과 완주의 서암산과 백암산,신선봉,선야봉을 거쳐 금산 남이자연 휴양림 야영장으로 내려왔음으로, 서암산의 서암봉에서의 경관은 서북방향의 옷을벗은것과 같은 바위를 그대로 드러낸 '대둔산'이 근접한것과 같은 근거리에 있었으며 그 좌측에 천등산이, 또한 그 너머의 '계룡산'을 넘겨다 볼수있었고 동쪽에 민주지산과 남쪽은 얼마전 다녀온 '운장산'을 비롯한 남서 '덕유산' 까지 조망되는 맑고 청명한 흰구름이 수놓여진 날씨였음으로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후였기에 산행이 더욱 즐거웠음으로 다음산행이 더욱 기다려졌으며 그 기다림을 메우기위해 토요일에는 가까이에 있음으로 가끔 오르는 네시간여 소요되는 '계양산'을 다녀왔다.
봄부터 계속된 공사로 '계양산'과 '효성산'사이의 절개지가 동물 통로와 등산 애호가들이 건너다닐수 있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음으로 도로까지 내려가 차도를 건너 다시 오르던 불편이 없어졌으며, 가정동뒤의 '천마산'과 '효성산'계양산'이 이어졌음으로 동물을 보호하기위해 통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음으로 전보다 더욱 쾌적한 마음으로 해발 200-300여m의 산을 네시간여 동안 수시로 부담없이 등산할수 있었다.
중앙고속도로와 잘뚫린 38번 도로를 이용하여 두문동재'싸리재'(1268m)로서 우리나라에서 제일높은 재인 이곳의 남쪽 '함백산' 넘어의 만항재(1330m)에 이어 두번째 높이있는 곳의 '백두대간'상임을 알리는 우람한 자연석이 있는곳에서 애마를 뒤로하고, 1993년 126만평이 '자연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것을 알리고, 또한 주의할점등을 60-70여세의 안내원의 안내말을 5분여에 걸쳐 상세히 들은후, 자연스럽게 임도를 따라 5분여 오르다 안내표지판 1번에서 우측의 숲속샛길로 들어 20여분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우뚝솟은 옆에 아담한 자연석으로 제작된 '금대봉1418m'의 정상석을 맞이하여 40-50여명이 디카에 담기고 담긴후 자리를 비워주기위해 직진은 '백두대간'길인 대관령의 선자령을 지나 매봉산(천의봉)으로 향하는 길임으로, 좌측의 길로 5분여 네려가 다시 오를때의 임도를 5분여 따르다 안내 표지판이 세워진 곳에서 대부분 임도를 벗어나 우측으로 '고목나무 샘'을 향하고 세명만 객기를 부리어 멀지않은 위치에 소재한 '우암산(1348)'에 다녀오기위해 직진으로 임도를 계속 따랐으며, 이곳이 바로 '두문동'으로서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을 알수있었다.
이곳을 '두문동재'라 하게된 데에는 유래가 있으며, 서쪽아래 계곡에는 '함백산'에서 발원하는 동남천이 흐르고 있으며 이 동남천 일대인 고한,사북,증산지역은 탄전이 개발되기 전에는 사람이 살지않는 청정지역이어서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물맑고 경치좋은 이상향으로 여겨 그 일대를 무릉리라 하였다하며, 현재 정선과 갈리는 태백선의 '증산역'이며 가을의 억새로 절경인 민둥산입구 일대가 정선군 남면 '무릉리'로 행정구역이 현존하고 있으며, 또한 증산역에서 정선쪽으로 첫 기차역이 '별어곡'역이었으나 현재는 패쇄되었으며, 또한 그 부근에 '居七峴' 마을이 있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어 고려 유신들이 不事二君의 지조를 지키려고 일곱사람이 이곳으로 숨어들어 살면서 두문 불출했다고 하여 '두문동'이라 하였고, 그때부터 불리어진 정선 아리랑은 600여년이 지난 현재도 그곳의 사람들은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하며 그곳에 고려의 시조인 王씨가 고려가 망한후, 성을바꾼 全(전)씨의 시조묘가있고 종산이있으며, 현재도 全씨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살고 있는곳이다.
◎ 정선아리랑 가사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후렴구)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모여든다. 이후생략....
그 당시 수도이고 정치 중심지였던 개성의 좋은 소식을 학 수 고대하며, 또한 불길한 예감을 나타낸 마음을 담아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함은 충신들이 죽임을 당하는것과, 만수산 구름이 모여든다 함은 불길한 일을 예측하며 근심어린 응어리를 노래로 표현하고, 다소 잊으려 함을 짐작해 알수있다.
우측의 산으로 오르며 더욱 이름모를 야생화가 많았으며, 큰 나무는 별로없고 꽃이지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머금은 야생들꽃이 넓은 능선의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었으며 '고목나무샘'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20여분후 '우암산(1348)'인듯한 정상에 띠지만 여러개 펄럭일뿐 아무 표시가 없는곳이 우암산'불바라기'(불을바라본다) 밭을 만들기위해 태백이나 사북쪽(남서) 사면에서 불을 질러놓고 이곳에서 산불의 진행 방향을 보고있다 맞불을 놓으면 양쪽의 불이 불바래기(우암산)에서 만나 꺼졌다고 한다.
서남쪽 방향을 향하니 백운산의 스키장이 이빨 빠진냥 볼성 사나운 경관을 조망하며 진행하였다.
이곳에서 등산로 예측을 잘못하여 짐작만으로 희미한 곳으로 진행하여 20여분 진행하다 방향이 다르고 또한 능선이 '대덕산'으로 연결되지 않음을 알고 오던길을 되돌아 '우암산'정상 부근에서 좌측으로 틀어 약40여분을 알바하고 금대봉으로 가는 등로에 들어서 3-4분여후 '고목나무샘'에 도착, '한강의발원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20여분후 1272봉을 우측으로 우회, 초원이 펼쳐지는 곳이 '분주령' 태백과 정선으로 가던 분기점이며, 이곳에서도 화전민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었고...
분주령에서 우측으로 분주동골과 좌측으로 오르는 1215봉을 향하는 길중 좌측의 길을 이용하여 25분후 봉우리 9부 능선을 우측으로 돌아 10여분후 '대덕산'에 오르니 남쪽으로 펼쳐진 들판에 자연석으로된 작은 표지석 '대덕산1307m'를 확인하고 남쪽으로 펼쳐진 이곳만도 수만㎡ '천상의 화원'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천연자원의 우리나라 야생화 자연 보호지로서 가장 넗고 자연 야생식물이 다양하나, 등산인들 보다는 자생식물 애호가 들에게 더 널리 알려져 있는곳이다.
대덕산 정상에는 고려 유신들이 세웠다는 사직단이 있었다고 하며, 대덕산은 '飛鶴上天形'(학의 등을타고 검용소의 맑은 물을 마신후 하늘로 날아 오르는 형상)이라고 하며, 대덕산은 우리나라에 크고작은 50여개가 있으며, 김천 백두대간상의 '대덕산(1290)'을 비롯한 다섯개 정도의 큰산이 있고, 대덕산은 대부분 정상이 펑퍼짐하고 덕성스러운 육산이라는 점이고, 순수한 우리말중 '더기'라는 말은 고원의 평평한 땅을 가리키는데 '더기'가 한자화 하면서 '큰덕(德)'이 대덕이 된것이라 한다.
북쪽으로는 청옥산,두타산,백두대간 능선이 장엄하고 남쪽은 금대봉, 은대봉, 함백산,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장관인데 동남쪽엔 매봉산의 풍력발전기가 뚜렸하게 보였다.
이 푸른 초원의 '천상화원'을 쉬이 떠나기 아쉬워 정상의 나무 그늘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매봉산'(천의봉)의 풍력발전 모습을 바라보며 준비해간 시원한 '더덕막걸리'를 한잔하고보니, 이러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人生을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결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도 없을 것임에 그 때의 기분을 살려 이 산행기를 보는 모두와 함께 술잔을 높이들어 위하여!를 크게 외쳐본다.
늦은 점심을 마치고 30여분 후 분주동골과 분주령으로가는 삼거리에 도착, 좌측의 검룡소 주차장을 향하여 15분후 검룡橋에 도착, 우측의 검룡橋를 건너 계곡을 따라올라 15분후 검룡소(儉龍沼)에 도착 514㎞(1300리)의 긴구간이며 한반도의 심장부이고 가장 중요한 서울의 중심지인 한복판을 가로 질러 흐르는 남한강 발원지로서 하루 2천-3천t의 물이흐른다 하며 수온은 항상9℃를 유지함으로 혹한 겨울에도 여간해 얼지않고 김이나며, 여름에는 더욱 시원함을 느낀다 하고, '금대봉' 기슭의 제당굴샘, 고목나무샘, 석회암 암반사이 둘레20㎡ 크기의 검룡소에서 솟구쳐 나와 남한강의 발원지가 되는데 수면이 너무 고요해 유심히 보았으나 전혀 물이솟는 것 같지않았으나 콸콸 흘러내려가는 물을보면 분명많은물이 샘솟는것이 분명하다.
1억5천 만년전에 형성된 석회암 지대의 '沼(늪소)에서 흘러 창죽천이 되어 광동댐을 지나 임계쪽으로 굽이치면서 골지천(骨只川)이 되었다가 대관령 서북쪽의 황병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노추산을 휘돌아 구절리를 거쳐 흘러도는 송천(松川)과 아우라지에서 만나 조양강이 된후 다시 두문동재 아래에서 사북,고한지역을 흘러온 東南川과 만나 동강이 되고 영월에서 다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된다한다.
'금대봉'은 백두대간 상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두타산쪽에서 달려와 피재를 지나 매봉산으로 올라가다가 낙동정맥을 갈라놓고 이어서 금대봉으로 와 함백산(1572.9) 쪽으로 달아나는데 대간으로부터 가지를친 금대지맥이 북쪽으로 뻗어가면서 대덕산으로 이어졌으며,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법칙을 가장 잘 나타내 보이는 의미 심장한 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