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산행기

한남금북2.11.9.29.보은갈목재-보습산-말치고개-구룡치-수철령-백석고개-구티재.

더더좋은친구 2011. 9. 30. 10:29

한남금북2.11.9.29.보은갈목재-회엄이재-보습산삼거리-보습산-말치고개-구룡치-수철령-600m봉-백석고개-구티재.15km.5:18.비20℃.

 

내속리갈목재(09:52)-545.7m봉(10:10)-회엄이재(10:24)-보습산삼거리(11:02)-보습산(11:10)-삼거리회귀(11:19)-말치고개(11:338-41)-580봉차광막펜스(11:53)-새목이재(12:20)-591봉(12:37)-586m봉(12:50-13:02)-구룡치(13:34)-수철령(13:56)-600봉(14:14)-백석리고개(14:25-30)-422m봉(14:40)-355m봉(15:00)-구티재(15:10-16:38)-음성휴게소(18:10)-강변역(19:15)-합정역(19:43)

 

이번은 오래간만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후 추워진다는 예보를 접하였으나 아직 추위가 산행에 지장이되지 않을것을 예측하고 비에대한 준비를 하여 이슬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우산을 받쳐들고 집을나섰다. 

 

지난번에 '한남금북' 정맥이 시작되어 두번째 이어짐으로... 지난번 속리산 천왕봉을 거쳐 서-남방향의 50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속리산 줄기의 갈목재로 내려왔음으로 이번에도 속리산 줄기이며 일부분은 국립공원에 포함된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그 곳에 도착되어 지난번에 살펴보았던 갈목재 넘어의 관리사무초소 옆으로 오를까? 생각했으나 지난번 내려온 곳이 출입금지 구간이라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의 제지와 주의를 받은기억이 있음으로 그 곳을 피하여 토사흘러내림방지막과 낙석방지 철제 시설물 사이의 틈새를 이용해 질서있게 오르기 시작했다.

 

속리산은 산으로도 빼어난 명산이지만 법주사와 정2품송의 이야기 거리의 역사가 있음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고찰이라 하며, 60여동의 건물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충청지방 승병의 본거지로 왜군과의 전투에서 몽땅 불에 타버렸다 하고, 팔상전은 임란 후 1605년 공사를 시작하여 인조 4년(1626) 벽암(碧岩)선사가 완공을 함으로, 보통 웬만한 목조 건물은 1년이면 공사가 끝나는데 22년이나 걸린 것은 전란 후의 어려웠던 경제사정 때문이아니었을까. 그래서 각 층마다 구조와 수법이 다르다고 한다. 목수가 바뀌니 솜씨와 수법도 바뀌고. 우리 목조 건물이 대개 설계도면없이 지어졌기 때문이기도 해서란다. 그래도 법주사 팔상전은 황룡사 9층탑 등 여러 목탑이 몽골과의 전쟁과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에 타 없어진 후 유일하게 남은 소중한 목탑이라 함으로 더욱귀중한 생각이들어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이러한 깊은뜻을 되새기며 방문 관찰하리라 생각하며 산행에 임했다. 

법주사의 국보 제55호인 팔상전(捌相殿)은, 화순 쌍봉사의 3층 목탑이 1984년 화재로 소실된 후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목탑이라 한다.

더구나 목조 5층 건물은 팔상전뿐이고. 상륜부를 포함하여 높이가 22.7m라하며, 요즘 건물로 치면 7층 높이로, 높은 빌딩이 없던 당시에는 엄청 웅장한 건물로 보였을 것이다.

 

이번의 정맥길은 명산은 별로업고 500여m봉 20여개를 넘어야하고... 재와 고개를 포함 일곱개 넘어야 됨으로 그 중에는 오래전 신라때 부터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던 '말티(馬峙)' 고개는 보은에서 법주사로 넘어가는 속리산 관문이며, 신라때 의신대사가 인도에서 돌아와 흰노새등에 불경을 싣고 속리산으로 들어가 법주사를 세울적에 헐떡이며 이 재를 넘었다하고 다시 그 뒤에 고려때 태조가 여기 이길의 형국은 아마 그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번의 날목인 '구티고개'는? 산외면 구치리이며...

보은에서 북서쪽으로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의면 구티리와 탁주리의 경계를 이루고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산의 모양이 거북이와 같다고해서 구티 또는 거북치라고 하였으며 또한 고개가 아홉구비 라고해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초 아홉구비이던 고개는 2001년도 봉계-장감간 확 포장공사를 하면서 현재는 네구비를 이루고 있으며 옛길은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속리산의 처왕봉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충북의 북부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 안선군 칠장산에 이르는 한남정맥의 통과 지점으로 동남쪽으로 말티재를 북쪽으로 천왕봉으로 이어지며 서쪽으로 탁주봉과 시루산으로 이어진다.

 

우측 갈목재 넘어에 위치한 관리초소 옆으로 오르는 곳이있으나 가까이의 이곳에서 들목으로 오르는 모습...

 

 

능선으로 오르며...

 

545.7m봉에서...

 

직진의 '보습산547.9m' 삼거리봉에서 정상을 향하며...

 

 

 

안부의 방향표...

 

보습산 정상에 서래야님의 정상판이...

 

보습산 삼각점307번이 있었다.

 

보습산 삼거리봉에서 '말치고개'를 향하는 모습...

 

태양열을 이용한 무인감시카메라 시설이 있었다.

 

531m봉에 방향표가...

 

37번 국도가 지나는 말치고개에 장승과 표지석과 정자가 있었다.

 

입간판이 서있는 우측으로 올랐다.

 

보은군 내속리면과 장안면의 경계가 이곳이다.

 

'말치고개'의 유래비가 여기에...

 

'속리산도로개통기념비'와 유래비가 있었고 정자와 장성이 있었다.

 

장내삼의 재배지인지? 출입을 엄격히 금하며 위반시 징역7년형에 해당한다는 펼침막으로 주지를 시켰다.

 

 

 

591m봉인듯한 곳에서 두사람이 우중에도 식사를 하고 있었다.

 

586m봉에서 비가 끈임없이 내리는 중에도 도시락을 비우고...

 

560m봉을 오르며 원주에서 원거리를 새벽에 오신분이 노익장을 자랑하며 힘차게 앞에감으로 존경심이 우러렀다.

 

 

회장님과 1호차 명산팀이 도시락을 펼치고 비가 내리는 중에도 즐겁게 식사하는 옆을 지났다.

 

현위치가 어디쯤인지? 몰라 숙의하는 모습...

 

530m봉을 내려오며...

 

600m봉을 내려오며 백석리고개가 멀지않은 지점에 있을것을 예측하며...

 

백석고개가 가까워지자 농지의 벼가 누렇게 익어 황금빛을 띰으로 풍요로웠다.

 

 

 

백석고개에 버스가 있었음으로 땀을 훔쳐내고 물과 간식을 먹은후 가방을 벗어놓고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한시간여 거리의 구티재를 향했다.

 

고저가 심하지 않았고 가방을 내려놓음으로 더욱 발걸음이 가벼워 예상보다 이른시간에 '구티재'에 내려와 20여분 기다려 차에올랐다.

 

구티제의 다음에 탁주봉을 향할들목...

 

 

 

우람한 '구티유래비'가 거북모형의 화강암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이번 산행의 20여개의 그만그만한 봉우리는 많았으나 산이 없었음으로 들머리(갈목재)에서 한시간여 후 '보습산' 삼거리에서 편도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곳을 다녀오기위해 세명이 직진하였고 뒤따라 3-4명이 더 다녀왔다.

 

보습산을 다녀와 몇봉을 더 넘어 말치고개의 37번 국도를 건너 산으로 오르니 우측에 철조망과 차광막을 덧댄 단단한 울타리를 우측에 끼고 한시간여 긴구간을 산행하였고 차광막 울타리를 벗어난 585m 봉인듯한 곳을지나...

 

출발시에는 소강상태이던 비는 한시간여후 부터 이슬비가 내리고 그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빗방울이 굵어져 점심이 늦어졌으며 한시가 가까워지자 공복임으로 보채는 배를 달래기위해 더 굵어진 빗방울임에 우비를 입었으나 흠뻑젖은 옷과 몸으로 낙엽이 싸인곳에 모여앉아 막걸리를 한잔씩 나누며 도시락을 비우고 진행하였다.

 

'구룡치'를 지나 505m봉인 듯한 곳에서 회장님을 비롯한 명산팀과 10여명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는 옆을지나 선두의 대열에 끼어 원거리의 원주에서 밤잠을 설치며 새벽에 상경해 합류한 고희의 연세를 훨씬넘긴(73세) 노익장을 과시하며 진행하는 분을 뵘으로 존경심이 일었으며 

또한 앞서가며 방향표를 촘촘이 적당하게 깔아줘 안심하고 진행할 수 있게해준 '안규식'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지며 '수철령'을 넘어 이번산행의 제일높은 600m봉을 넘어 '백석고개'의 37번 국도변에 세워진 산악회 버스를 봄으로 안심되어 물과 간식을 먹은후 애마에 빈 배낭을 벗어놓고 몸과 마음도 가볍게 마지막 얼마남지 않은 '구티재'를 향해 진행하여 10여분후 422m봉을 올랐고 20여분후 마지막 봉을 넘어 날씨가 시원한 덕인지? 비를 맞아 몸은 구질구질 했으나 오르내림의 편차가 심하지않아서인지? 15km의 짧지않은 구간이었으나 별 어려움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