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385 10.7.1 옥천 안내 장계橋-참나무골산(422)-이슬봉(454.3)-마성산(409)

더더좋은친구 2010. 7. 2. 11:08

 

  385 10.7.1 옥천 안내 장계橋-참나무골산-이슬봉-마성산-유관순생가-향교-정지용생가-유관순생가.8km.3:30.구름29℃.

 

  경부고속도로 옥천IC(09:25)-37국도 장계橋(09:30)-참나무골산(10:18)-이슬봉(10:43)-339봉(11:13)-며느리재(11:30)-늘치재'서낭재'(11:47)-마성산(12:06-38)-교동리'무궁화어린이집'(13:05-22)-육영수생가(13:30)-옥천鄕校(13:37)-정지용생가 및 문학관(13:58-15)-유관순생가(14:30-50)-귀경(14:58)-옥천IC(15:05)-천안휴게소(16:05)-한남동(17:10)

 

  지난주에는 정선과 삼척 경계의 '풍악산'과 '삿갓봉, 남전산'을 다녀오고, 또한 토요일 우중에 '낙동정맥'의 영양 '윗 삼승령에서 영덕의 '울치재'까지 탐방함으로 이제겨우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구간을 하였음으로 '주왕산'을 넘어 '신불산'과 '가지산, 영축산, 천성산, 금정산'을 거쳐 '몰운대'까지 닿을 수 있을지? 아직 까마득하여 감도 잡히지 않음으로 요원한 긴 기간이 남아있어 더욱 매번 철저히 준비를 하고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다른 좋은 수 가 없을것 같은 생각이다.

 

  이번에도 별 이름있는 산이 아니고 중부 내륙권의 이름없는 산이며 오지의 산도 아니련 만, 산군들은 만차를 넘어 앉을 좌석이 없어도 오겠다는 산군들로 하여, 그래도 좌석이 한두석 모자라 매번 예약을 거절하느라 총무님이 곤욕을 치른다는 말에 모두 행복한 비명이라며 다른 산악회는 인원이 모자라 전전 긍긍하는 실정임에 그렇다고 차를 한대더 증차할 수 도 없으며 현재도 한번에 백여명씩 움직임으로 이것을 이끌어 나가기에 어려운 여러가지의 애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나 이러한 어려움만 잘 혜쳐나가면 회를 거듭할 수 록 더욱 탄탄한 산악회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부고속도로의 옥천IC를 나와 37번 도로에 들어서는가? 싶더니 10여분도 못되어 들머리인 대청호의 '장계橋'를 건너 좌측의 임도에 들어서 우측의 산밑에 애마가 정차하였다.(09:35)

 

 시멘트 콩크리트 포장도로 옆에 세워진 '마성산,이슬봉'의 산행도가 있는곳으로 올라 40여분후 '참나무골 산' 인듯한 참나무가 몇 그루 자리잡은 봉에 띠지가 한곳에 몰려 걸려있었음으로 그 곳이 '참나무골 산' 인줄 알고 삼각점과 정상판을 찾아보아도 아무런 흔적을 찾을수 없어 서운한 생각을 마음에 남기고, 몇(3)분을 지나 우측으로 참나무 군락지역이 GPS상 '참나무골 산'의 위치를 확인하였으나 봉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한 등산로였음으로 조금 뾰족했던 곳에 정상을 표시하기위해 띠지를 몰아 걸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10:18)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평탄한 숲 길이었으나 구름이 끼고 햇빛은 없었으나 무덥고 바람 한점없는 날씨는 습하고 후덥지근한 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운 날씨에 '이슬봉'에 올랐다,(10:43)

 

  온몸에 땀이흐르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시야가 가렸으나 좌측으로 희미하게 간간이 '대청호'와 '금강'줄기의 구비치는 물결을 보여주지 않으려 몸부림 치는 냥 열어주지않는 시야를 비집고 억지로 조망하며 '이슬봉'을 지난 후 부터는 조망이 터진곳이 많았으나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여 시원하지는 않았으나 간간이 열어주는 시야에 부족하게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또 다시 30여분후 339m봉에 올라, 우측으로 더 높은 '봉' 이 있고 좌측으로는 호수가 있으며, 내려가는 등로여서 우측으로 가야하고 좌측은 호수로 인해 등로가 끊길것을 예측하였으나 문명의 기기에 의지(gps)해 좌측으로 진행하는것이 맞음으로 좌측 등로를 이용해 50여m의 급사면을 내려가 자그마한 봉을넘어 20여분 후 '며느리재'인듯한 잘룩하고 우묵히 들어간-'재'인듯한 곳을지나며, '며느리재'를 확인하였고 그 후 15분 여 후 '서낭당재'"를 지난 오르막은 mtb(산악자전거)가 지나간 바퀴자국으로 움푹패인 자국이 선명한, 오르는 등로를 올라 두어 개의 봉우리를 넘자니  안개낀 초여름의 날씨임에도 여간 무더운 날씨가 아니었으나 어렵게 '마성산'에 올랐다.(12:05)

 

  오르는 등로가 그다지 급 경사가 아니고 길지않은 곳을 올라 이번 산행의 마지막 산인 '마성산'의 헬기장과 정상석, 삼각점 등이 있었으며 산불감시 초소 근방에는 반대편의 날목인 한때 국모로서 국민 모두의 추앙을 받았던 '육영수'여사님의 생가에서 올라온 5-6조의 10여명과 종주 팀의 선행자 등 20여명이 드문 드문 흩어져앉아 도시락을 비우는 중 이었음으로 정상 조금밑 블록에 선명히 페인트 도색을한 헬기장 가의 풀 위에서 각자 정성들여 가족이 준비해준 도시락을 펼치고 덕담을 나누며, 20여분 후, 계속 오르는 후속 팀을위해 자리를 내준 후 다시 '정상석'과 '삼각점'이 각각 두개씩인것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였다.(12:38)

 

  정오까지도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고 오후에는 햇빛이 뜨겁게 내리 쪼이는 전형적인 여름날씨의 직사광선을 받으며 천주교 묘지를 내려와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며 건축자재가 우측에 싸여진 창고와 좌측에 축사를 바라보며, 도로가 얼마남지않은 곳의 '무궁화어린이집' 울안에 설치된 수도를 이용해 선행자를 따라 염치불구하고 윗 옷을 벗고 등목과 머리에 물을 몇 바가지 붓고, 주차된 승용차 뒤로 돌아가 바지를 갈아입은 후, 그곳을 나왔다.(13:22)

 

  한때 국민모두의 추앙을 받은 국모였던 '육영수'여사의 생가가 복원되었다는 곳의 잠겨진 대문의 겉만 보고, 교동구판장을 지나 '옥천鄕校' 입구의 홍살문 인듯한 안 쪽의 태극문양이 선명한 우람하게 우뚝선 '明倫堂'을 둘러보았다.(13:32)

 

   등산 배낭을 애마의 좌석에 걸어놓고, '고향'과 '향수'의 작가인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을 둘러보기위해 가벼운 몸으로 5분여 걸어가 초가 집으로 보존된 실개천이 흐르고 물래방아가 도는 생가로 들어가는 소슬 사립문을 들어서 '정지용'시인의 흉상이 초가집에 붙어있었으며, 마루 한편에 놓여진 방문록에 서명과 방문을 기념하기위한 짧은글을 남기고, '정지용문학관'에 들어 대표작인....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절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 지면 뷔인 밭에 밤 바람소리 맡음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고향"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 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전하지 않고 머언 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꼻에 홀로 오르니 한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오래전의 어린시절에 불렀던 주옥같은 여러 가곡이 영상실에서 흘러나오는 친밀한 가곡이 가슴에 와 다았으며, 새롭게 고향과 흘러간 추억의 어언 70여 평상이 주마등 처럼 흘러 문학관을 나오는 初老의 눈앞에 어른거려 본인도 모르게 눈가를 적셨다.(14:25)

 

  30여명의 '정지용문학관'을 조용히 나오는 산객들의 모습이 그냥 보내기 서운했던지? '육영수'여사님의 생가는 문이 잠겨있어 그냥 지나쳤다는 말을하며 몇마디 대화를 하던 중 어디서 오셨는지? 등 을 묻고 그곳의 관리원(40대 여)이 문을열어 주어 관람하게 하겠다며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나서는 모습이 오랜만에 대하는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에 다시한번 감사한 마음으로 그 분의 뒤를따라 길게 줄지어 10여분 거리에 떨어진 복원된 '육영수'여사님의 생가를 볼수있다는 기쁘고 고마운 마음에 들떠 궂게 잠겼던 잠을통을 열고 않으로 50여명이 들어....(14:35)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지역 상류 古宅의 양식으로 축조된 옥천지역의 '옥천댁'으로 불리는, 삼정승(김,송,민)이 살았다는 고택을 1918년'육종관(육영수님의 부친)'님이 금광과 중국등으로 무역을하여 그 당시 자동차가 세대나 되는 큰 부자로 살면서 이집을 매입하여, 각기 독립된 아랫집, 큰집,헛간,사당, 연무정 등의 영역으로 구획하고 담장 협문 부속건물 들로 적절히 배치하였고 몇번의 개축에 이어 1974년 옥천군의 기념물 123호로 지정되어 그 후에도 2002년과 2007년등 여러번의 개축을 거쳐 얼마전인 2010년 5월에 안채,사랑채,위채,아래채,사당등 13동의 건축이 완료한 상태였으며, 내부의 집기와 부속 물품을 배치 후 정식으로 개장할 예정이라 하며, 아직 개장되지않은 상태여서 평소에는 출입을 금하는 폐쇄된 상태라 한다.(14:45)

 

  연못의 위쪽에 위치한 '연무정'을 위시한 안채의 뒤에는 우물이 있었고 굴뚝을 벗어난 뒤 편의 언제나 푸르른 대나무 숲 안쪽에는 연자방아가 설치돼 있었으며, 그 옆에는 곡식을 넣어두는 옥외 뒤주가 두개나 있었으며 안채의 부엌에서 나오면 편리하게 쓸수있는 사각의 돌로 둘러쳐지고 뚜껑이 덮인 우물이 있었고, 또한 집안이 공동으로 쓸수있는 헛간과 바같채의 중간에 위치한곳에는 이 규모보다 더 큰 우물이 있었고 맨위쪽의 떨어진 곳에는 사당이 모셔져 있는것이 특이하게 한국 고유의 정신적인 지역 특성의 삶을 나타낸 높고깊은 조상에대한 유교의 으뜸 사상이 깃들어 있는것 같았다.

 

  모두가 진지하게 관람하면서도 시간을 정확히 마쳐 예정된 시간전(14:58)에 귀경출발하여 천안휴게소를 거쳐 한남역에 예정된 시간보다 30여분 이른 옥천을 출발하여 평소보다 더욱 빠른 두시간여 후 한남동에 도착(17:10) 예정된 시간전에 귀가하였다.

 

장계교를 건너 좌측의 시멘트 길로들어 '등산로'입구에 세워진 등산 안내도.

 

세워진제 얼마되지않은 '이슬봉'의 정상석....

 

'마성산' 정상에 산불감시 초소와 정상석이 두개, 삼각점이 두개였다.

 

'육영수'여사님의 생가가 복원되었으나 집기등이 배치되지않은 상태여서 아직 일반인은 출입을 하지않고 있었다.

 

                                                                                        '옥천향교'의 전경...

 

'정지용' 시인의 문학관과 생가에 세워진 동상....

 

실개천이 흐르는 '정지용'이 태어난 곳의 초가집....

 

'정지용'님의 생가에 붙어있는 흉상''''

 

실개천이 흐르는 물을이용해 돌아가는 물래방아....

 

모 포기에 붙어있는 분홍빛의 우렁이 알....

 

새로단장된 '육영수'님의 연무정과 연못....

 

안채 뒤편에있는 연자방아와 바깥채로 통하는 소슬대문....

 

안채로 통하는 대문으로 들어서는 외간 남자들....

 

좌측의 안채 부엌에서 나와 우물이 있고 뒤주가 두개가 있었고 옆에는 연자방아 위쪽에는 늘푸른 대나무 숲이....

 

한가지라도 더 들려주려는 듯 설명에 열중인 관리인....